바실리카
벽의인토나코intonaco위에 있는 그리핀 같은 것으로 특징지어지는 바실리카Basillica는 시민 포럼
Civil Forum의 서쪽구석 근처에 있다. 이것은 이런 형태 건물들의 예로써 알려진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이며,
최종형태에 있어서 크리스티안 바실리카모델로 발전해 갈 오랜 전통의 시작이었다.
폼페이에서 바실리카는 샴늄 Samnite 시대 행정장관의 이름인 오스칸인 니-푸피에의 공장표시를 한 타일로
지붕을 만든 것과, 그 벽의 intonac에 새겨진 비명을 근거로 BC 125~100년 시대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주요문은 문주가 눈에 띄는 다섯 개의 통로로 구성되는데, 그것은 노출된 현관과, 남쪽으로 물을 저장하기 위한 깊은 우물이 있는 방으로 통한다. 현관은 Basillica로 가는 실제 입구로 통하며, 이곳에는 네 계단위에 피사드가
세워져있다.
긴쪽의 중앙에는 두 번째 두 개 있었다. 뒷벽은 6개의 코린트식 원주로 구성된 두 개의 겹쳐진 층이 있는 주춧돌인 재판소가 자리잡고 있다. 측면에 두 개의 방이 있는데 구석마다 이오니아식 원주 한 개와 도리아식 반원주 두 개로 된 입구들이 있었다. 이 두 개의 방과 재판소 사이 공간에는 지하의 둥근 천장을 한 방으로
통하는 두 개의 긴 계단이 있다. 두 개의 나무계단을 통해 접근할 수 재판소는 재판을 하고 판결을 공표하는
재판관들을 위한 곳이었다. 바실리카는 이 도시의 시민생활과 상업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재판이 이곳에서 집행되었으나, 중요한 사업회담도 열렸으며, 경제, 법률문제가 처리되기에 적합한
곳이었으며, 권위있는 학자들은 현대의 월스트리트 Wall Street에 비교하는게 적당하다고들 한다.
* 바실리카 내부를 재현한 모습*
<
주피터 신전의 잔여물
지금은 그 기둥들만....
호레아.. 포럼 올리토리움
호레아에 있는 파사드의 문주. 8개의 입구를 구성하는 별돌로 된 이곳은 창고와 곡물 시장을 두기 위한
곳이었으나 AD.79년 화산이 터질 때까지 완성되진 않았었다. 내부벽은 인토나코의 흔적이 하나도 없는
거친 석조물이며 지붕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었다. 현재는 현대식 지붕을 만들어놓은 상태..
고고학적 발견물들을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된다. 이곳에는 매일 사용하던 많은 항아리와 도기류, 착유기,
기둥머리와 건축물 뿐만 아니라 Antiquarium에서 나온 화산 희생자의 캐스트도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끔찍한 증기로부터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보호하려고 웅크리고 앉아 있는 노새 마부의
모습이다.
티베르루스 , 제르마니쿠스의 아치
Via dell'Abbondanza
Via dell'Abbondanza와 그 이름을 딴 분수앞에서 여행객들을 위한 가이드의 안내..
당췌 무슨말인지.. 아래의 그림은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것입니다.
주피터 신전
대극장
BC 3세기와 2세기 사이 헬레니즘 시대에 세워진 폼페이의 극장은 분명히 극리스 극장의 모든 건축
규범을 흡수했는데, 그것은 다양한 건물의 수정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같았다.
귀빈석은 반원 모양이 아니라 편자 모양이며, 역시 그리스풍이며 로마-이탤릭 분위기가 더 난다. 게다가
건물의 구체적인 위치는 그리스에서의 강한 특징인 극장공연의 제식적 특성으로 추적될 수 있다.
폼페이에서 구입한 한국어로 된 책.. 16000Lire 우리나라돈으로 8,000원
컬러화보로 되어있는데다가 귀중한 자료.. 무진장 싼 가격이었다. 책을 산다는 것. 욕심이나지만
그만큼 배낭의 무게압박을 견뎌야했기에.. 망설였지만.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폼페이의 가상 복원자료사진은 위 책에서 발췌하였음.
canon AT-1ㅣFD50mm F1.4s.s.c
Film used:kodak Tmax
Fuji frontier 350scan
July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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