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의 역사
창경궁(昌慶宮)은 성종이 당시의 세 대비, 곧 세조 비 정희왕후 윤씨, 덕종 비 소혜왕후 한씨, 예종 비 안순왕후 한씨를 위해,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 머물렀던 수강궁 자리에 1483~1484년에 걸쳐 세운 궁궐이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연결되어 동궐이라는 하나의 궁역을 형성하면서 동시에 독자적으로도 궁궐로서의 완결성을 갖고 있었으므로 그 자체로도 궁궐로서 필요한 공간 구조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 에서 법전인 명정전까지는 그 규모나 격식 면에서 창덕궁보다 격이 낮게 조성되었음이 눈에 띈다.
이것은 그 거리가 짧고 중간의 문도 생략되어 있으며, 축도 남향(南向) 이 아닌 동향(東鄕)을 하고 있는데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외전과 궐내각사는 빈약한데 반하여 내전과 생활 주거 공간은 상대적으로 발달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창경궁이 왕의 정치와 행정, 제의(祭儀) 등 공식성이 강한 활동을 위한 공간은 미약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창경궁은 독립적인 궁궐의 역할과 동시에 창덕궁의 모자란 주거공간을 보충해주는 상호보완적 역할을 하였으며 그래서 창덕궁과 더불어 동궐로 불리기도 하였다. 창경궁은 임진왜란으로 완전히 불탄 이후 광해군에 의해 중건되었으나, 인조반정 이후 일어났던 이괄의 난으로 다시 상당히 망가졌다. 이렇게 되자 서궐로 지어졌던 인경궁의 건물을 헐어다 옮겨 짓는 방식으로 궁궐을 보수했다. 1633년 7월 인조는 창덕궁에서 창경궁으로 이어했다. 순조 연간의 화재로 다시 크게 훼손된 이후 수리를 거친 창경궁은, 일제시대 창경원으로 격하되면서 박물관이 들어서고 담이 헐리면서 내전 건물의 바닥은 모두 마루로 바뀌어 전시 공간으로 활용됐으며, 남쪽에 동물원과 북쪽에 식물원 등이 설치되어 일반인에게 놀이터로서 개방되었다.
해방 후에도 산업화로 팽창되는 서울의 부족한 휴식 공간을 채워주기 위해 창경궁의 희생을 강요했고, 8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창경궁’이라는 제 이름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찾은 것은 이름 뿐, 빼곡이 건물이 들어차 있던 제 모습은 더 이상 찾을 길이 없다. 현재의 창경궁은 수난을 겪고 최근 약간 복원된 모습이다. 견뎌낸 세월과 고난만큼 왕에서 이름 없는 궁녀들에 이르기까지 그 속에 살았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창경궁은, 사람 사는 집인 동시에 국가를 경영하는 최고의 관청인 궁궐로서 역사를 말해주는 살아있는 박물관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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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홍화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것이 옥천교입니다. 옥천교 건너 보이는 문이 '명정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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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386호 옥천교를 밟고 있는 우리 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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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 홍화문을 옆에서 찍은 샷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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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정문에서 바라보는 명전정과 문정정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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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에 보이는 것이 국보 226호 명정전입니다. 명전전은 현존하는 궁궐의 법전 중 가장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다른 궁궐과는 달리 동향이라는 것이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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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의 편전으로 임금이 정사를 보던 곳이죠. 일반적으로 편전은 법전 뒤에 일직선으로 위치한다고 하는데 창경궁의 편전은 동향인 명정전과는 달리 방향이 다른 남향을 하고 있습니다. 가운데 길을 보면 3가지 길이 보이는데 가운데 길이 임금만 다니는 '어도'라고 합니다. 양쪽은 신하들이 다니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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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정전의 늠름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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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정문모습입니다. 왜 다시 뒤로 나왔냐구요? 내맘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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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원 기다리는 사이 다시 뒤로 나와서 옥천교 모습 다시한번..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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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교의 옆모습입니다. 여기 하전은 실제 흐르는 하천입니다. 경복궁/창덕궁에도 하천은 있으나 말라있지요. 일본넘들이 맥을 다 끊어서 수로를 다 바꾸어 버려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여기서 피가 한번 끓네요..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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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정전 올라가는 계단에 있는 '해태'상입니다. 일반적인 해태와는 다르게 좀 코믹하게 생겼다는것이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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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정전에서 바라보는 명정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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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정'의 모습. 여기에서 영조가 과거 급제자들에게 어사주(술)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네요. 원샷을 했는지는 모름.ㅋㅋ 이건물은 실제 순조 34년(1834)년에 중건된 건물이라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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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정의 모습. 머하는 곳인지는 안내자 설명 한눈파느라 못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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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전의 모습. 역시 설명할때 딴짓하느라 못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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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긴 통명전..여긴 왕비가 생활하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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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당.. 요기도 마찬가지로 왕비가 거처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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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에서 바라본 창경궁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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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에서 바라본 창경궁의 전경 2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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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보물 846호 풍기대라고 하는 것인데..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측정하는 깃발이 달린 깃대를 꽂는 받침돌입니다. 18세기 만들어진것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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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계.. 시간 보는 법을 설명들으려 했으나 파리떼처럼 몰린 아이들땜에 못들었음.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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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성종태실비입니다. 즉, 성종의 '태반'을 항아리에 담아 여기에 보관한다고 하더군요. 원래 경기도 광주군에 있었는데 1930년 일제넘들이 전국 각지에 있는 역대 임금들의 태실을 서삼릉으로 이전하면서 유독 성종태실만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합니다. 옮길당시 여긴 일제가 '창경원'으로 동식물원을 꾸며놓고 유원지로 훼손에 놓았던 시점인데 아마도 성종에 대한 멸시의 의도가 다분이 있지 않았나 추측된다고 합니다. 열받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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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긴 '춘당지'라는 연못입니다. 원래 여기서 활도 쏘고 과거도 보고 했던 춘당대 앞의 연못이라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원래 여긴 연못이 아니었는데 1909년 일본넘들이 지들 형식으로 정원을 꾸며놓은 곳이죠. 그후 1986년 창경궁 중건 공사때 우리나라의 전통 조경 수법으로 다시 조성된것이라고 합니다. 와이프가 초딩때 여기 연못에서 보트타고 찍은 사진이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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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볼거 거의 다봤네요. 언덕을 좀더 올라가면 예전 창경원 시절때 식물원의 건물이 그대로 있다고 하는데 보기 싫어서 안올라갔습니다. 나오기전 안내원과 경비아저씨의 뒷모습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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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뒷모습은 우리 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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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가 공격한다고 도망치는 우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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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여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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