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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얘기

마지막 로맨티스트...( 몇년전에 pc통신에서 한참 유행하던 이야기죠?! )

“ 처음 뵙겠습니다. 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입니다. ”

< 1 >
친구가 그러더군요. 자기 아는 선배 중에 참 신기한 사람이 있다고. 전 그냥 호기심에 한번 보고싶다고 했는데.

그가 제게 처음 한 말이 바로 ‘마지막 로맨티스트’란 말이었어요.

정말 이상한 사람도 다 있다고 생각했죠. 다짜고짜 로맨티스트라니*

아무래도 왕자병에 단단히 걸려있든지 아니면 자기 멋에 사는 시덥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저 별들... 저 별빛은 아마 10만년, 아니 더 이전에 온 빛일지도 모르는데...

그 빛을 보고 있는 우리는 그만큼의 시간을 보고 있는 것이 될 테니까요.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대개 아름답기 마련이죠. ”

저건 또 무슨 책에서 읽은 대사인지... 전 시큰둥하게 대답했어요.

“ 아... 네. 뭐... 그렇네요. ”

“ 당신도 아름답습니다. 저 별빛보다 더... ”

뜨아... 그 말을 들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어떻게 이런 느끼한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어요.

솔직히 저런 말을 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그것도 처음 본 사람한테... 하지만 나중에 알았어요. 그의 말이 진심 이라는 걸...


< 2 >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게 연락이 왔어요. 다시 만나 자구요. 그 말도 얼마나 화려하게 말을 하던지...

전 그렇게 끌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싫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만나러 갔었죠. 밥을 먹고, 잠시 길을 거닐며 그는 제게 이야기 했어요.

“ 진정한 로맨티스트는 함부로 자신의 로맨스를 만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라면 제 로맨스를 받아주실 수 있을 것 같네요.

지금 제 귓가를 스치고 간 바람도 그러던걸요. 이 여자, 꽉 잡으라고. ”

아무래도... 솔직히... 이 남자 제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이런 사람 직접 보셨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느끼하겠어요.

“ 저기요... 원래 말을 그렇게 하세요? ”

“ 네... 왜냐하면 전 로맨티스트거든요. ”

“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안그래요? ”

“ 뭐라고 그래도 상관 없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만 괜찮다면. ”

으... 영화에서 이런 대사 하는 거 보면 참 멋지고 그랬는데... 실제로 들으니까 진짜루 닭살 쫘~악~ 이였어요.

한참을 그러고 가다가 그가 제게 묻더군요. 어떤 영화를 보고 싶냐구...

그래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했더니, 씨익 웃으면서 극장으로 데리고 가잖아요. 전 같이 가면서 걱정이 됐어요.

그 영화가 하도 인기라서 예매를 하지 않으면 보기 힘들다고 친구가 그랬거든요.

하지만 그는 제가 보고 싶은 영화를 어떻게 알았는지 미리 예매를 해 놨더라구요. 자리도 참 좋았어요.

극장이 좁긴 했지만 앞 자리가 비어있어서 머리 때문에 화면이 안 보이구 그런 일은 없었거든요.

그렇게 영화를 보다가 그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그가 벗어놓은 옷이 떨어져서 주워 올리다가 우연히 주머니를 보게 되었는데...

뭐가 잔뜩 들어 있더군요. 호기심에 살짝 봤는데... 세상에... 그날 개봉된 영화가 종류별로 전부 예매되어 있었어요.

그것도 4장씩... 우리 두 사람 자리하고 앞 자리까지 전부 예매를 해 놓은거 였어요.

나중에 집에 오면서 그에게 물어봤어요. 어떻게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예매할 수 있었냐구... 알면서 물어본 건데... 그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 운이 좋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요... ”

그 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사람 진짜 로맨티스트일지도 모르겠다고.


< 3 >
그 날은 제가 너무 바빠서 오랜만에 만난 날이었어요.

좀 어색한 느낌도 들어 별로 말도 안하구 그냥 밥이나 같이 먹고 헤어지게 되었는데, 그가 그러는 거에요.

“ 지금 뭐가 제일 하고 싶어요? ”

“ 네? 저... 글쎄요... ”

“ 아무거나 대답해 보세요. ”

“ 그냥 생각이 나는 건... 놀이기구를 타고 싶긴 한데* 너무 늦어서 못 가겠죠? 9시 다 되어 가니까. ”

“ 잠깐만 실례 할께요. ”

“ 네? 어... 어머!!! ”

그는 갑자기 저를 번쩍 안더니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어요.

모든 사람들이 저희를 쳐다보았고 저는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어요. 그는 힘이 든지 씩씩 거리면서도 계속 뛰었어요.

“ 저기... 이제 됐으니까 내려주세요~ ”

“ 재미있으세요? ”

“ 네, 고마워요. 그러니까... 내려주세요. ”

“ 알겠습니다. ”

그는 땀이 송글 송글 맺힌 얼굴로 저를 내려주고는 씨익 웃었어요.

갑자기 그러는 법이 어디 있냐구 핀잔이라도 주려고 했는데 그의 얼굴을 보니 차마 그 말을 못하겠던걸요.

그리고 휴지를 꺼내 그의 얼굴을 닦아주며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고 말이에요.


< 4 >
제 생일날, 처음으로 약속 시간에 늦은 그는 얼굴이 말이 아니었어요.

보기 좋던 그의 뺨이 움푹 들어가 있었고, 손은 상처 투성이었어요.

“ 어머. 왜... 왜 이렇게 됐어요? ”

“ 좀... 그럴 일이 있었습니다. 괜찮으면 어디 좀 같이 가실까요? ”

“ 네? ... 네... ”

그러더니, 그는 저의 손을 잡고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거에요. 전 이해할 수 없었죠. 왜 이 사람이 이러는지...

워낙 다른 사람하고 다르기는 했지만 그 날은 정말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차를 타고 한참을 가서 내린 곳은 강원도에 있는 이름 모를 어느 산이었어요.

전 아무 말 없이 제 손을 잡고 앞으로 가는 그의 등을 보며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왠지 그냥 따라가야 할 것 같아 힘든 걸음으로 그의 뒤를 쫓아갔어요.

날은 벌써 어두워져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그는 많이 와 본 길인듯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어요.

그리고 고개를 돌아 산 중턱에 닿자, 그는 제게 이야기 했어요.

“ 이제 다 왔어요. ”

“ 여긴 왜 온 거에요? ”

“ 그 이유는... 내일 아침 해가 뜨면 알 수 있을 겁니다. ”

“ 어머, 잠깐요. 그럼 오늘 여기서 밤을 새야 돼요? ”

“ 네... ”

“ 저... 안되겠어요. 집에 가야 해요. ”

“ 절 믿어주시고... 여기 앉아서 아침 해를 바라봐 주실 수 없으세요?  제발... 부탁 드릴께요. ”

솔직히... 로맨티스트인 이 사람이 제 생일에 무얼 선물할지 내심 기대했었는데...

이건 실망도 이만저만 아니었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산 속에서 같이 밤을 보내자니... 하지만 차도 끊겼고...

설마 이 사람이 나쁜 짓 할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고... 어쩔 수 있나요. 밤을 새는 수 밖에...

그리고 바위 위에 오도카니 앉아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전 그의 어깨를 베고 잠이 들었어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그가 제 귀에 살며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어요.

“ 시간 됐어요. 이제 일어나서 앞을 보세요. ”

전 부시시 눈을 뜨고 앞을 보았어요. 그리고 전... 입을 다물수 없었어요.

아침해가 은은히 비추는 산 중턱에는, 전부 장미로 가득했어요. 눈 앞에 보이는 건 모두 장미.

그것도 빨갛게 핀 장미가 아침 햇빛을 담은 이슬을 머금고 있는 모습이라는 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보다도 더 아름다운 모습이었어요.

“ 세... 세상에... 이 장미들이 어떻게 여기에... ”

“ 우리나라에 단 한 곳뿐인 야생 장미 집단 서식처에요.

전에 무슨 책에선가 본 기억이 있어서... 당신에게 꼭 보여주고 싶어서 데리고 왔는데...

꺾여진 100송이 장미보다 피어있는 1000송이 장미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 참, 벌써 하루가 지나버렸지만, 생일 축하해요. ”

여길 찾으려고 이 근처 산을 다 헤메느냐고 얼굴이랑 손이랑 엉망이 되어버렸다며 쑥스럽게 웃는 그를 보며...

이젠 그의 말이 느끼하지 않았어요. 그냥 좋았어요.

그리고 저도 느끼한 말 한마디 했답니다.

“ 어쩔 수 없이 사랑하게 만들어 버리는군요, 당신이란 사람은... ”


< 5 >
영원한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고 슬픈 사랑만이 영원할 수 있다면서...

이제야 진정한 로맨티스트가 될 수 있겠다고 그는 파리해진 얼굴로 이야기 했어요.

50년을 사랑해 주었으면서도 더 사랑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먼저 죽게 되어 미안하다며 주름진 제 손을 쓰다듬으며 미안하다고...

오랜 세월 함께 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하며 당신보다 먼저 그 곳에 가서 장미 밭을 만들고 있을 테니 나중에 천천히 오라며...
그는 눈을 감았어요.

까맣게 검버섯이 피어있는 그의 얼굴에서 그 날 아침, 장미보다 더 아름답던 당신의 얼굴을 떠올리며...

사랑합니다.

나의 마지막 로맨티스트........


이걸 읽고 있는데... 눈물이 주르륵 흐르더군요.( 앗... 지금도... ㅠ.ㅠ )

너무나 감동적인 이야기였어요.

fore님이 제게 보내줬는데... 무신 맘 먹구 보내준건지... ㅡ.ㅡ;;;

하긴 메일에두 그렇게 썼더라구요. " 이거 보내줬다가 본전두 못 찾는거 아냐?! "

PC통신 쓰던 시절엔 참~ 재밌었는데...

여기 저기 뒤적 거리지 않아두 좋은 글... 예쁜 글... 재밌는 이야기... 쉽게 만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 유료비 내는게 아까워 끊었지만... ㅡ.ㅡ;;;

지금 봐도 너무나 감동적인 이야기죠?!

이런 로맨티스트가 되기위해 노력해 보는것두 즐거운 일 아닐까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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